이해인 / 아름다운 모습
친구의 이야기를
아주 유심히 들어주며
까르르 웃는 이의 모습.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 더 먹으라고 권하면서
열심히 밥을 먹는 가족들의 모습.
어떤 모임에서 필요한 것 챙겨놓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이의
겸허한 뒷모습.
좋은 책을 읽다가
열심히 메모하고 밑줄을 그으며
뜻깊은 미소를 짓는 이의 모습.
조용히 고개 숙여
손님이 벗어놓은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이의 모습.
‘저기요. 사진 하나 찍어주세요!’
갑자기 부탁을 하였을 때도
귀찮아하지 않는 웃음으로
정성 다해 사진을 찍어주는 이의 모습.
이웃이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서
말 없이 손잡고 눈물 글썽이며
기도부터 해주는 이의 모습.
누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큰 일 난 것처럼 한걸음에 달려와
자기 일처럼 내내 걱정하며
그의 곁을 지켜주는 이의 모습...
<시집 / 작은 기쁨 중에서>
*이해인 수녀*
평소와 달리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즘,
산책하는 길엔 늘 꽃과 나무를 세심히 관찰하는 가운데 도감도 찾아보며 공부를 하다보니 전에는 모르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됩니다.
무심했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새로운 발견에 눈뜨는 기쁨!
이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계속 갈고 닦아가야 할 덕목이 아닐는지요.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구나.
세상엔 이것저것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기도 하구나 하면서 요즘은 빔프로젝트 활용법도 배우고 환자로서 혈당 체크하는 법, 혈압 재는 법도 배워가는 중입니다.
과일이나 과자를 먹을 때도 원산지나 설명서를 챙겨보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표기된 연도를 확인하여 자칭 해설사가 됩니다.
함께 사는 이들의 특징과 좋은 점을 발견하여 눈여겨보는 일 또한 일상의 삶을 충전하게 해주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비교적 오래전에 쓴 ‘아름다운 모습’이란 이 시에는 부분적인 내용들만 들어갔지만 누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들을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자리에 없는 틈을 타서 책상 위에 놓아둔 컵을 씻어놓고, 미처 비우지 못한 휴지통을 비워놓고 가는 ‘슬그머니 천사’들이 부쩍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저도 질세라 분발하여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을 전하는 사랑의 숨은 천사가 되고 싶어 이런저런 궁리가 많아지는 평범 속의 뜻깊은 날들!
밖으로 외출을 못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웃을 배려하는 법을 조금씩 다시 배워가는 것 또한 코로나19의 봉쇄된 시간이 낳아준 선물 중 하나라 여기며 감사를 발견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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