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꽤 다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많고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외롭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관계의 '양'은 외로움과 큰 상관이 없다.
이보다는 관계의 '질'이 더 중요해서 한 두 명일지라도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또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 외로움을 '사회적 배고픔'이라고 보는 시선에 따르면 적어도 우리가 존재론적인 수준에서 갈구하는 관계란 서로 깊이 '이해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최근 애밀리 오거 캐나다 맥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이해하는 관계는 우리의 외로움을 충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나를 정의할 때 사용하는 요소 '나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연인 제인과 마이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마이크가 제인에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제인의 목표들과 깊은 두려움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높은 이해, 낮은 따뜻함),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마이크가 제인의 목표와 두려움들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낮은 이해, 높은 따뜻함). 그런 뒤 제인에게 마이크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 같냐고 물었다.
그 결과 마이크가 항상 따뜻하지는 않아도 제인을 정말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룹의 사람들이 반대로 마이크가 항상 따뜻하지만 제인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룹의 사람들보다 마이크와의 관계가 제인에게 매우 소중하고 중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친밀한 관계라면 따뜻함과 이해가 모두 있어야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실제 연인 및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인 또는 친구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이해하고 있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해당 관계가 자신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잘 말해주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친구나 연인이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고 여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관계를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생각해보면 영혼의 동반자 같은 친구나 연인의 특징이란 성격이나 자라온 배경이 같다는 것보다도 다른 점이 많지만 대화가 잘 되고 웃음코드가 비슷하다는 사소한 요소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대화가 잘 되고 코드가 비슷하다는 것이 상호 이해의 전제 조건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곳은 다르더라도 바라보는 곳이 같고 생각이나 감정은 달라도 대화가 잘 돼서 얼마든지 다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이 사람도 재미있어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나의 이해자인 것은 아닐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무엇보다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어떤 관계든지 항상 감정적으로 뜨겁고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상대방을 향해 한 쪽 귀를 열고 있는 한 얼마든지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관계는 오랜 친구로 수렴한다는 것이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누군가가 나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고 반대로 내가 타인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동아사이언스>
https://n.news.naver.com/article/584/000002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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