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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나잇값은 거꾸로 간다

category 책 속에서 2021. 6. 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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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나잇값

나잇값 -

나이에 어울리는 말이나 행동을 얕잡아 이르는 말.

 

 

나이에는 값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맞이할 인생의 단계에는 그에 걸맞은 가격이 매겨져 있다.

그 비용을 제대로 지불한 사람은 건실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정과 함께 칭찬과 보상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잇값 못한다」는 질타와 함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이 「나잇값」에는 단순히 성적이나 수입, 재산 같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사회의 기대가 담겨 있다.

우리는 특정 나이에 결혼하고, 특정 나이에 아이낳고, 특정 나이에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채권자들의 압박을 받는다.

 

나이의 값은 세월에 따라 원금에 이자를 붙여가며 착실히 올라간다.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는 동안엔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이자나 원금이 체납된 순간 독하고 끈질긴 추심이 시작된다.

 

운 좋은 사람은 평생 나잇값을 체납하는 일 없이 우수 대출고객의 지위를 누리다 갈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엔가 채무 상환 능력을 잃어버린다.

누구는 '백수'가 되고, 누구는 '노총각'이 되고, 누구는 '노산'을 한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이유는 중요치 않으며, 당사자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 또한 중요치 않다.

본인이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고 해도 사회가 정해준 가격을 지불하지 못했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추심과 독촉을 피할 길은 없다.

그때부터 우리에게 명절은 우울의 근원이요, 동창회는 스트레스의 원천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은,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거액의 나이 빚을 지고 있었다

70대 노인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우환거리로 인생의 첫 발을 디딘다.

사교계의 저명인사인 부모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위협이 될 수치스러운 자식을 어떻게든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성성한 백발을 갈색으로 염색하고,

과장되게 알록달록한 옷을 입히고, 기력 없는 아들의 손에 억지로 딸랑이를 쥐어준다.

 

 

천성이 선한 벤자민은,

어떻게든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려 애쓴다.

 

재미없는 공놀이를 좋아하는 척하고,

가끔은 그릇을 엎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아이 다운' 행동을 보여주며 어른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가 타고난 저주는,

단순히 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세월이,

보통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유치원에서 쫓겨난 5살에는,

굽었던 허리가 조금 펴지고,

 

 

대학교 입학식에서 망신을 당한 18살에는,

백발 밑에 갈색 머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노년보다 중년의 인상에 가까워진 20대 무렵에는,

성숙한 남성을 좋아하는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그때뿐,

새로 만든 가족들 역시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을 감당하지 못한다.

중년이 된 아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이처럼 꾸미고 다니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춘기 아들 역시,

지나치게 어린 외모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

 

몸에는 활력이 넘치고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진짜 나이를 공개한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결국 벤자민은 좋아하는 공부나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나이를 서른 살쯤 속인다.

그는 청년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유아로 계속 어려진다.

몇 년 후 가족들은,

너무 작고 아둔해진 그를 보모의 손에 맡기기로 결정하고.

 

 

그는 기쁜 마음으로 젖병을 빨고 '코끼리'나 '구름' 같은 단어들을 배우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토실토실 발그레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다...

 

 

벤자민 버튼의 인생은 떠들썩하게 시작되고 조용히 끝났다.

​언제나 배려가 넘치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지만 사는 동안 그는 칭찬보다 비난에 익숙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나잇값을 못했다.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대작가가 위트 있게 묘사한 이 촌극을 지켜보며,

삶의 가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오롯이 여러분의 몫이다.

 

<서메리:작가 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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